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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단신
한국과총, 정책 역량 갖춘 과학기술자가 있어야 한다 원문보기 1
- 국가 한국
- 생성기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 주제분류 과학기술인력
- 원문발표일 2011-10-10
- 등록일 2011-10-10
- 권호
2010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1천307명이었다. 안전 의식이 향상되고 제도 및 장치가 정비되면서 희생자는 줄고 있지만 매년 일어나는 사고와 사망자 발생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원자력 상업 발전을 시작한 1978년 이래, 현재 20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30여년의 원자력 발전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한명도 없었을 뿐 아니라 ‘사고’(급) 역시 한건도 없었다. 이것은 원자력의 안전성과 더불어 우리의 원전 운용 능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원자력에 대한 불안감의 정체
그런데 원자력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국민의 66%만이 ‘그렇다’고 답변한다(2010년, 원자력문화재단). 이 수치는 1993년의 34%에서 크게 향상된 것이기는 하다. 원자력 폐기물 처분장이나 발전소 등 원자력과 관련된 시설에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시하고 반대 운동을 벌리곤 한다. 반면, 사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매년 사고가 발생하는 다른 산업분야의 경우에는 시설을 자기 지역으로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원자력의 30여년 무사고․무사망 기록에도 불구하고 왜 원자력의 안전성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왜 원자력에서는 그러한 과학적 자료와 논리가 통하지 않는 것일까?
여기에서 위험에 관한 의사소통의 권위인 피터 샌드맨 박사의 견해를 살펴보자. 샌드맨 박사는 일반인이 인지하는 위험은 위해와 분노의 합이라고 한다. 위해는 실제 일어난 인명 재산상의 손실 등을 말한다. 그리고 분노는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는데, 위험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위험에 대한 노출이 자발적인가, 통제 가능한가, 공평한가, 과정이 옳은가, 도덕적인가, 익숙한가, 잘 기억이 되는가, 혐오스러운가, 시간과 공간적으로 퍼져있는가 등이 대표적인 분노의 구성요소이다. 이에 반해, 전문가는 위험을 예상되는 여러 결과들과 그 각각에 대한 발생 확률을 곱한 것의 합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전문가의 입장은 ‘합리적’인 것이다. 그리고 과학적이다.
위험의 주요 구성 요소인 ‘분노’
그렇다면 우리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전문가의 위험에 대한 평가방식을 따라야 되는가. 대중으로 하여금 이것이 과학적이기 때문에 이를 따르라고 교육시켜야 하는가. 물론 교육의 결과, 사람들이 이 논리를 받아들이고 동조하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현실에는 그러한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 혹은 그 작업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도 꽤있다.
원자력에 대해 불안감은 사람들이 과학적 방법을 모르거나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원자력 문제에 대한 해법은 찾기 어려워진다. 원자력을 이야기하면 원자폭탄이 연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쓰리마일아일랜드나 체르노빌 사고 등을 들면서 원자력에 대한 혐오감을 표시하는 것도 말릴 수 없는 일이다. 20~30년 전에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며, 시설 자체가 비상시 안전을 보장하지 못할 조악한 것이었다고(체르노빌) 설명하여도, 그 사건들을 우리 원전과 연계하여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사람들의 이와 같은 부정적 입장은 샌드맨 박사가 말한 ‘분노’의 요소들이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이 분노 요소들은 계량화나 객관화가 매우 어려운 감정적, 심리적 측면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 이를 다루는 데에는 엄밀한 자연과학적 입장을 넘어서, 인간 행태를 다루는 사회과학적 방식이 필요하게 된다.
과학기술정책의 정치적 성격
자연과학에 종사하는 이들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정통성을 확립하고 성과를 낸다. 과학자들은 몇 가지 조건을 전제로 객관적 결과를 얻고 이를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근거로 삼는다. 이렇게 그들이 도출한 결과는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데 그것들은 건드릴 수 없는 확고한 것일까?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갖게 되는 경우나, 혹은 이론상으로는 맞지만 이를 대외적으로 증명할 근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 과학기술자들에 의해 확인된 바는 실험실과 생산 현장 등에서 재생과 반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통제 가능 조건을 벗어난 것에 대한 과학기술자들의 판단은 조심스럽게 내려져야 한다. 특히 다른 사회 분야들과 상호 작용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결정을 과학기술자들이 내리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비록 그 문제의 핵심에 과학기술이 위치하고 있는 것일지라도 그렇다. 정책에는 정책적 판단이 들어가게 된다. 여기에는 ‘합리적’ 방법을 통해서 찾아내기 어려운 복잡한 요소들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책의 일정 부분은 순전히 과학적 방법에 따라야 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책에는 그 정책과 영향을 주고받는 환경이 있고, 많은 사람들의 역학관계가 개재되게 된다. 이 때문에 정책에는 ‘정치‘적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다. 이점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정책을 과학기술자들이 해야 한다는 말은 우선 듣기에 그럴듯할 뿐 현실적으로 타당치 않은 주장이다. 과학기술자 중에서 정책적 감각이 있는 사람, 정치적 판단이 가능한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 보다 적절한 말이다.
구제역과 과학비즈니스벨트
우리 축산업에 엄청난 타격을 준 구제역 대책에서도 정책적 허술함이 드러난다. 구제역 발생을 확인하고 대응하기 위한 절차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절차에 따라 방어막을 쳤지만 구제역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가축 살처분을 주 대책으로 삼는 매뉴얼에는 방역 작업에 참여할 축산업 종사자들의 반응을 입체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맹점이 보인다.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의 강도와 함께, 가축이 감염되었을 때의 보상에 대한 개인적 판단 기제를 고려했어야만 했다. 매몰 처분과 방역망 설치, 백신 접종 등의 비용에 대한 예측은 물론, 가축 매몰이 축산 농가들에 미치는 심리적 충격과 침출수의 후방 효과까지도 고려한 대책이 마련되었어야 한다.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를 어디로 할 것인가가 당분간 과학기술계를 달구는 이슈가 될 것이다. 입지 선정 과정은 정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과학기술적 입장에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외형상 타당할 뿐이지 현실성은 없는 말이다. 위치가 어디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그 지역에 엄청난 자원이 투입되는 것은 물론 고급 인력의 대량 유입을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입지는 과학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커다란 지역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항인 것이다. 결국 이것은 정치적 판단이 개재되는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과학기술자들이 모여서 ‘순수하게’ 과학기술적 입장에서 판단하고 결정해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순진하기 짝이 없는 주문이다. 대안들을 비교 평가하는 요소와 그 요소들 간의 비중 배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이들을 결정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차원이며 그만큼 ‘과학적’ 합의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과학적’ 방법을 넘어서는 과학기술정책
원자력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 반응에 ‘분노’라는 측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구제역 방역 대책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중요한 요소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정치적 요소가 끼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보면, 모든 과학기술자가 전문 분야의 수월성을 갖춰야 한다는 주문에는 약간의 곁가지가 달려야 한다. 일단의 과학기술자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이슈들의 사회적 교호작용을 분석, 파악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 역량을 길러야 한다. 과학기술자들이 적절히 역할을 분담하여 사회 다른 분야와 균형 잡힌 관계를 형성하게 될 때 과학기술계의 공동체에 대한 기여가 진정한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 송하중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hahzoong@khu.ac.kr